코로나19

30만명 죽어도 남 일?… 美 코로나 사망자에 무감각한 이유

조명연합 2020. 12. 23. 01:16

30만명 죽어도 남 일?… 美 코로나 사망자에 무감각한 이유

 

 

지난 11월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메디컬센터에서 의료진이 숨진 코로나19 환자를 옮기고 있다. (출처: 뉴시스)

수 많으면 개인적 연관성 ↓

환자 격리·바이러스 안보여

뇌에 시각·신체적 자극 부족

백인보다 흑인 사망 비율 높아

“공감 불러일으킬 방법 찾아야”

 


[천지일보=이솜 기자]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를 나타내는 말이다.

미국 아이오와주 에임스에 사는 토드 클린트가 그의 아버지를 땅에 묻는 날, 그는 깜짝 놀랐다. 일부 조문객들은 코로나19로 사망한 그의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면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2일 기준 미국의 누적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32만 6772명이다. 단순히 3억 3천만명의 미국 인구를 두고 볼 때도 천명 당 한명씩 사망하는 꼴인데, 미국에서는 이런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보기가 어렵다.

또한 연예인과 지인들 중 가장 최근의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주목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는 휴일의 외출 계획,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 바이러스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사상자가 나오는 사건 앞에서 사람들이 점점 더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이 나타내는 위기와 비극,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에 필요한 행동에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대량 학살과 대규모 재난을 연구한 심리학자들은 사망자가 이처럼 많을 때는 뇌에서 무엇인가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사상자들 앞에서 뇌는 개별 시신에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코로나19 사망자는 병원과 양로원에 격리되면서 친구와 가족에게서조차 보이지 않게 된 경우가 많다.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에서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는 조안 샤움은 “가끔은 우리가 매일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은 당신을 변화시킨다. 당신의 곁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사상자 수와 연민의 관계

1994년 르완다에서는 수십만명이 군인과 민병대에 의해 살해됐다. 미국과 전 세계는 이 르완다 대학살에 대해 대체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무관심에 의문이 생긴 심리학자 폴 슬로빅은 집단 고통과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다. 한 연구에서 연구진은 피실험자에게 기아로 죽어가는 7세 소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소녀를 돕기 위해 기부를 요청했다. 그는 또 다른 그룹에게 굶주리는 두 명의 아이를 보여줬고 그 다음에는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을 보여줬다. 슬로빅은 사람들의 연민이 위험에 처한 아이들의 수만큼 커지지 않고 종종 줄어들었음을 발견했다. 슬로빅은 “사실 더 많은 사람이 죽을수록 때때로 우리는 덜 신경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상자 수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느끼기가 어렵고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대해 점점 더 절망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31일 캘리포니아 풀러튼에 있는 주드 메디컬센터에서 로멜리나 나바로(64)가 마지막 순간에 코로나19 환자인 남편 안토니오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30만명이 훌쩍 넘었지만, 전문가들은 우리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많은 것들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볼더 콜로라도대 자연재해 센터를 이끌고 있는 로리 피크는 “우리 국민의 관심을 끈 재난들을 생각해보라. 카트리나 같은 허리케인 등의 참상을 뉴스에서 보여주면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라며 “그러나 이 대유행은 카메라로 촬영할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쌍둥이 빌딩이 붕괴되는 9.11 테러 같은 단일 사건 대신 대유행은 눈에 보이지 않고, 천천히 다가오는 만성적인 위험으로 펼쳐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뇌는 점차 위험을 간과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시각적이고 신체적인 사망의 징후를 보지 않으면 머리 속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과 연관을 짓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피크는 이런 현상을 폭염에 비유했다. 모든 자연재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카트리나나 산불과 같은 시각적인 효과가 없기 때문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WP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환자들의 현실을 자세히 전했다. 일부 환자들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잿빛이 됐으며 그들의 피부는 붉거나 보라색으로 얼룩지게 됐다.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는 거의 방문하지 못하게 돼 병상에는 산소압축기의 웅웅 거리는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간호사 샤움은 “그들(코로나19 환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이라며 “그들이 얼마나 고립돼 있는지 표현하기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망자의 다수가 백인이었더라도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최근 몇 주 동안 매일 사망률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는 가운데 일부 사회학자들은 커지는 무관심이 누가 더 죽어가고 있는지를 나타낸다고 보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백인 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피크는 “누가 죽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인구통계학이 우리가 보고 있는 공감의 수준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WP는 결국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방법을 찾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감정이입이 없다면 사람들이 방역 지침을 따르도록 설득하고 급증하는 죽음을 막기 위해 필요한 희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피크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통상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옆에 있던 생존자들이 잔해 속에서 끌어 올려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이와 비슷하게 대유행 기간 미국인들은 서로를 구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깨진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공감은 우리가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