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원 보고서 미스터리… 중간 숙주는 대체 무엇?
[천지일보=이솜 기자] 지난 1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과학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원을 조사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국제 과학자들은 4주(자가격리 2주)를 중국에서 보낸 후 2월 9일 중국 측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예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의 기자회견은 중국의 홍보가 승리한 것으로 보였고,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공식 보고서가 지난달 30일 공개됐다.
319페이지 분량의 WHO-중국 공동연구 보고서는 자연발생설을 지지했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수입 냉동식품을 통해 중국에 도달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했으며 바이러스가 우한 실험실에서 유출됐다는 가설은 폐기했다.
코로나19 기원과 관련 자세한 조사 내용이 보고서에 포함됐으나 입맛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조사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고 이에 한국, 미국, 일본 등 14개국은 해당 조사의 접근성, 투명성에 우려를 표하고 추가 연구를 촉구했다.
결국 1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코로나19 보고서와 관련된 후속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번 코로나19 기원 보고서, 어떤 부분에서 가장 의문과 논란이 컸을까.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최근 보도를 바탕으로 알아봤다.
◆中 가축·야생동물 표본 시험에도 숙주종 못 찾아
보고서는 네 가지 바이러스 전파경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은 ‘박쥐→다른 동물→인간 전파’였다. SARS-CoV-2의 유전적 배열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한 역사적 패턴은 바이러스가 본래의 동물원에서 직접 또는 중간 숙주종을 통해 인간으로 전이됐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쥐에서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킨 중간 숙주를 찾질 못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SARS-CoV-2의 가능한 중간 숙주는 여전히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박쥐와 천산갑은 SARS-CoV-2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지만 이 병원체들은 직접적인 기원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히 유사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중간 숙주는 박쥐나 천산갑이 아닌 다른 동물이었을까. 그러나 연구팀은 중국 전역에서 가축과 야생 동물을 놓고 시험했지만 SARS-CoV-2에 양성 반응을 보이는 표본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원들은 SARS-CoV-2와 관련된 코로나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중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더 많은 동물 종들을 계속해서 연구할 계획이다.
◆연구실 유출 가설 배제에 과학자들 반발
WHO-중국 공동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만장일치로 우한 연구소에서의 바이러스 유출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봤다. 연구실 유출이 발생하려면 2019년 12월 이전에 바이러스가 의도적으로 설계되거나 배양돼야 하는데, 보고서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일축했다. 추가로 진행될 연구에서도 연구실 유출 가설은 제외하기로 했다.
과학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 결과에 만족하지는 않았다. 3월 초 미국, 유럽, 호주의 과학자 26명은 WHO가 지정한 과학자들이 연구실 유출 시나리오를 완전히 조사하는 데 필요한 훈련과 법의학적 기술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공개서한을 냈다. 이들은 코로나19 기원과 관련한 어떠한 가설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연구 시설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거나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학원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WIV)의 연구원들이 2019년 가을에 병에 걸렸었다는 보도를 가지고 실험실 유출설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WHO-중국 공동연구팀은 이 연구원들이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다고 반박했다.
◆중국 선택적 정보 제공에 투명·신뢰성 의심
중국 측의 선택적 정보 제공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연구팀은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몇 달 전 주민들의 유전체, 역학, 임상 및 감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었다. 즉 코로나19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수집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앞서 중국 과학자들은 2019년 10~11월 호흡기 질환 환자 7만 6천여명의 의료기록을 조사했는데 이 중 92명의 입원환자가 코로나19 증상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중국 측은 이들 중 아무도 코로나19 항체에 양성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이와 연관된 조사에 선을 그었다.
세계 과학자들은 가벼운 증상으로 지나칠 수 있는 적은 의심 사례도 엄격한 임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 입원 환자들의 항체는 WHO 연구팀이 도착하기 불과 몇 주 전에 검사했는데 코로나19 항체가 몸에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결과가 없는 만큼 1년 이상 지난 후 검사할 때는 항체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연구팀이 2019년 가을부터 7만 6천여명의 호흡기 환자의 원자료(raw data)에 대한 접근을 요청하자 중국 연구진은 환자의 사생활 보호 필요성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데이터의 추가 공동 검토와 관련한 표본 추가 시험을 권고했다.
◆운전대 누가 잡았나… 권위주의 국가에선 허울뿐인 국제법
WHO는 세계보건보안에 관한 선도적인 국제기구이며 대유행의 기원을 조사를 주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나 사람들을 다룰 때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마디로 WHO가 이번 조사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WHO가 중국과 체결한 기준 조항은 기본적으로 조사를 공동연구로 축소했는데, WHO 주도의 연구팀이 독자적으로 철저히 조사할 수 있는 접근 권한을 갖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WHO 관계자들은 그 임무가 “(우한) 실험실에 대한 법의학적 감사는 말할 것도 없고 조사가 아닌 과학 연구를 설계하고 권고하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고 포린어페어스는 전했다.
이는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지배하는 기관의 국제보건규정 결여를 보여준다. 국제 보건 규약(IHR)은 국제적으로 확산하는 질병 등으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위한 각국 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법인데, 대유행 기원에 대한 조사는 IHR을 준수하고 투명해야 하며 모든 행위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돼 있다.
그러나 WHO는 중국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을 하지 못했고, 대신 중국이 조사 속도와 의제를 정하고 최종 보고서를 승인했다. IHR은 비밀과 복종을 중시하는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규범을 집행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대유행의 기원 문제에 대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 결과 조사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할 때 과학적 필요성이나 동료 검토보다는 현실 정치의 논리에 따르는 위험이 뒤따른다. 조사는 이미 늦었다. 코로나19 최초 발병 후 1년이 지났고 중요한 정보의 많은 부분이 사라졌다. WHO는 독자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료와 분석을 위해서는 중국 과학자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보고서는 이번 조사에서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없었다면서도 다른 나라로 조사 범위를 넓힐 것을 권고했다. 이는 WHO 조사단이 도착하기 직전 중국 정부가 ‘수입 냉동식품 기원설’과 함께 다양한 경로로 홍보했던 ‘해외 발병설’에 따른 조치다.
[기사출처] : 천지일보(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84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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